정주형 John
Jung
[학선이의 마지막 달리기]
중학교 시절의 일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학선이라는 한 친구가 있다. 일반인들에 비해 지능지수 발달이 늦은 이유로 당시 중학생이던 우리와 같은 반을 다니던 학선이의 실제 나이는 스물이 넘었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학선이는 지능만이 아니라 근육과 뼈에도 이상이 있는지 팔과 다리는 휘어져 있어 쉬 걷거나 행동할 수 없었다. 학선이와는 중학교 1, 2학년을 같이 다니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녀석과 제법많은 시간을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니, 솔직히 말해 녀석을 제법 데리고 놀았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아직 철들지 않은 중학생 시절에 내가 학선이를 따뜻하게 보살폈을 정도로 성숙하진 않았을 것이라 당시 나는 절반은 학급 반장이라는 의무감 때문에 절반은 재미로 학선이와 자주 어울렸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반장~ 반장~”하고 유난히 나를 잘 따랐었고 별로 할 일이 없는 쉬는 시간에는 통통 튀는 듯이 걸을 수 밖에 없는 느린 걸음으로나마 내 뒤를 따라 붙기도 했던 것 같다.
이후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새롭게 반이 편성되었고 더 이상 학선이와는 같은 반이 못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작은지라 복도를 지나며 학선이와 종종 마주치면 반갑게 웃으며 서로 인사를 나눴던 기억은 있는데… 그런데
어느날 그 녀석이 죽어버렸다는 얘기가 들렸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체력테스트를 받는
체력장 준비를 하다가 길에서 넘어져서란다.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학교 운동장이 좁아서 장거리 달리기
연습을 하려면 부득이하게 교문을 나서 도로를 달려야 했는데 하필이면 학선이도 교문 밖까지 따라 나서다가 그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서 넘어져버린 것이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학선이는
관절이 휘어 제대로 뛸 수도 없었고, 또 장애를 가지고 있어 체력장 없이도 충분히 진학할 수도 있을텐데
굳이 왜 체력장을 준비하느라 따라 나섰을까...’ 그런 의아한 생각과 동시에 나는 학선이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또한 이내 이해가 되었다. 왜냐, 적어도 나는 학선이
친구였으니까...
‘맞아, 학선이는
그저 최선을 다하려 한거야.’ 그렇다. 녀석은 사소한 일이라도, 안되는 머리에 안되는 신체이지만 해보려 끝까지 노력한 놈이었다. 수업중에
선생님께서 무작위로 번호를 불러 뭔가를 시켰을 때, 학선이는 자기의 장애 탓으로 미루거나 상황을 회피하려
한 적이 없었다. 녀석은 그냥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고 동그랗게 근육이 뭉쳐진 입과 혀로
어설프게 국어책을 읽으면 비록 친구들은 자지러지듯이 웃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선생님이 시킨만큼 읽어내린 것이 학선이었거든...
...
...
...
막상 주위에서 한때 친하다가 한참 떨어져 잘 보지 못하던
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되면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게 되지만 좀처럼 믿겨지지 않아 여전히 존재하려니…하는
착각에 당장은 큰 슬픔에 잠기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경험했다. 그리고 그러다 어느날
문득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현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 것이 몇 달이나 몇 년이
지난 후이든 그때는 미뤄두었던 눈물이 한꺼번에 펑펑 쏟아지게 된다는 것 또한 그때 처음 경험했다.
학선이가 죽은 날로부터
1년 정도 후 어느 비오는 날, 라디오에서 김동환의 ‘묻어버린
아픔’이 흘러나왔고 그때 나는 집이 떠나갈 듯 펑펑 울어버렸다. 아마도
이때 어느 한 바보의 죽음이 살아있는 한 청소년의 남은 삶 앞에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열정’이라는 교훈을 깊숙하게 각인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20년도 넘은 일이지만 지금도 그 친구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
그래서 우리는, 학선이처럼
용감하게 달리고 있는가?
<CA 200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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